1. 디지털 유산은 늘어나는데, 법은 그대로입니다
현대인의 삶은 대부분 온라인에 연결되어 있다. SNS, 이메일, 사진, 암호화폐, 클라우드, 유튜브, 블로그, 인터넷 은행 계좌, 각종 포인트, 멤버십 등 수많은 디지털 자산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막상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겨진 가족들이 이 자산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는 ‘디지털 유산’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이나 절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민법은 기본적으로 상속에 대해 “사망자의 재산은 상속인의 권리와 의무로 승계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재산’은 대부분 **전통적인 유형 자산(현금, 부동산, 채권 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디지털 자산처럼 비물질적이고 기술적 특성이 강한 자산에 대해서는 법적 해석이 명확하지 않다. 그 결과, 실제 상속 과정에서는 유족이 온라인 자산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거나, 존재를 알더라도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2. 디지털 자산은 ‘소유권’인지 ‘사용권’인지 법적 판단이 어렵습니다
디지털 유산 관련 법이 정립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자산의 법적 성격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직접 구매한 전자책, 음악, 영화, 게임 아이템은 물건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플랫폼이 "사용권(License)" 형태로 제공한다. 즉, 사용자가 해당 콘텐츠를 ‘빌려서’ 쓰는 것이지, ‘소유’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런 사용권은 일반적으로 개인에게 한정된 권리다. 그래서 사망 후에도 상속이 불가능하거나, 계정을 삭제하는 것으로 계약이 종료된다. 애플,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플랫폼의 약관을 보면, 대부분 “계정은 타인에게 이전될 수 없고, 사망 시 종료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국내법과 충돌할 소지가 있어, 상속법의 해석이 필요한 영역이지만, 현재까지 한국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입법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해외 플랫폼이 지배하는 구조에서, 한국에서 어떤 법을 만들더라도 글로벌 기업의 약관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법 적용이 어렵고, 정부와 입법기관도 디지털 유산 입법을 뒤로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3. 개인정보 보호법과 충돌하는 문제가 많습니다
디지털 자산은 대부분 계정 기반으로 운영된다. 즉, 고인의 개인정보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유족이 그 자산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사망자의 계정에 로그인하거나, 플랫폼에 접근 권한을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국의 개인정보 보호법과 충돌하는 문제가 생긴다.
한국 개인정보 보호법은 세계적으로도 강력한 편이며, 본인의 동의 없이 제3자가 개인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사망자는 동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유족이 대신해서 접근할 권리를 주장해도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즉, 유족이 고인의 Gmail이나 카카오톡, 인스타그램을 열어보려 해도, 플랫폼 입장에서는 개인정보 침해 우려로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법적으로도 “사망자의 개인정보는 일정 기간 보호된다”는 규정이 있지만, 그 이후에는 ‘삭제’가 원칙이다. 보존이나 이전보다는 폐기 중심의 개인정보 정책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디지털 유산을 상속받는다는 개념 자체가 현재 한국 법제도와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처럼 개인정보 보호와 상속권 사이의 법적 균형이 잡히지 않아, 디지털 상속법 제정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
4. 디지털 상속법 논의는 시작됐지만, 실제 입법은 미흡합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한국에서도 디지털 유산 관련 문제의 심각성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몇몇 국회의원들은 ‘디지털 상속권 보장법’, ‘온라인 계정 상속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입법화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설명한 법적 해석의 어려움과 개인정보 보호법과의 충돌이다. 또한 일부에서는 “디지털 자산은 개인 프라이버시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상속보다는 삭제가 원칙”이라는 의견도 있다.
2021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디지털 유산의 보호 및 처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안한 바 있고, 관련 학계나 변호사 단체도 디지털 자산 상속 가이드, 유언장 작성법 등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권장사항’ 수준이며, 법적 효력은 없다.
반면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은 이미 디지털 자산의 상속권을 인정하는 판례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예를 들어 독일 연방법원은 2018년, “페이스북 계정은 상속 대상이며, 유족이 접근할 권리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런 흐름과 비교하면, 한국은 여전히 디지털 상속에 관한 법적 기준이 매우 미흡한 상태다.
디지털 상속, 개인의 준비가 가장 중요한 시대
한국에서 디지털 유산 관련 법이 없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 디지털 자산의 법적 개념이 모호하고, 소유권인지 사용권인지 불분명하다.
- 글로벌 플랫폼 약관과 충돌해 국내법이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 개인정보 보호법과 상속법 사이의 충돌이 해결되지 않았다.
- 국회와 정부 차원의 입법 논의는 있지만, 실질적인 제도화는 부족하다.
이처럼 제도적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디지털 자산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결국 개인이 스스로 정리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계정 목록을 정리하고, 백업을 해두며, 디지털 유언장을 작성하고, 각 플랫폼의 사망 처리 기능을 설정해두는 것만으로도 가족에게 큰 유산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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