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지털 유산 상속,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누구나 디지털 자산을 가진다. 구글 계정, 유튜브 채널, 블로그, 클라우드 저장소, 암호화폐 지갑, 온라인 게임 아이템까지. 이 모든 것은 사망 이후 ‘디지털 유산’으로 남는다. 그런데 문제는 디지털 자산이 일반적인 상속 재산과 달리 법률적으로 소유권과 접근 권한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각국은 이러한 자산의 상속을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과 제도를 마련해 왔지만, 아직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생전에 디지털 자산에 대한 유언장이나 접근 권한 이전에 대한 준비 없이 사망하기 때문에, 유족들은 계정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소중한 자료나 자산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이유로 사망자 계정 접근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실제 사례를 통해 미국, 일본, 독일, 한국의 디지털 유산 상속 현실을 비교해보고, 우리가 지금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실무적인 시사점을 함께 살펴본다.
2. 미국 – 유언장 기반 디지털 자산 상속 제도
미국은 2015년을 기점으로 ‘Fiduciary Access to Digital Assets Act (FADAA)’를 주별로 채택하며, 디지털 자산 상속 제도화를 시작했다. 이 법은 개인이 디지털 자산을 유언장에 명시하거나, 생전에 플랫폼의 설정 기능을 통해 상속 대상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한다.
✔ 실제 사례
미국 뉴욕의 한 여성은 남편이 암으로 사망한 후, 그의 Gmail과 Google Drive에 저장된 사업 관련 문서와 암호화폐 지갑 백업 파일에 접근하려 했지만, 구글로부터 접근 거부를 당했다. 그러나 남편이 생전에 구글의 비활성 계정 관리자 기능을 설정해둔 덕분에, 아내는 2주 만에 자료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디지털 자산 상속이 가능하려면 생전 사전 설정이 핵심이라는 교훈을 준다.
미국은 일부 주에서 유언장 없이도 법원의 명령으로 계정 접근을 허용하지만, 전체 연방 단위의 통일된 제도는 아직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자산에 대한 사전 지정 기능과 법적 유산 처리 도구가 비교적 발달한 편이다.
3. 일본 – 개인정보 보호를 우선시하는 접근 제한 정책
일본은 디지털 자산 상속 제도가 거의 마련되지 않은 국가 중 하나다. 일본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이유로 유족의 계정 접근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으며, 사망자의 클라우드 계정이나 SNS에 접근하려면 법원의 허가나 수사기관의 협조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 실제 사례
2022년, 일본 오사카에서는 한 30대 여성이 사망한 아버지의 LINE 메시지와 가족사진이 담긴 iCloud 계정에 접근하지 못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 법원은 “애플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계정 접근을 차단한 조치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유족 입장에서는 매우 안타깝지만, 플랫폼 기업의 프라이버시 정책을 법적으로 보호한 것이다.
일본은 이러한 판례를 통해 “디지털 자산은 상속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개인정보의 범위에 포함되면 접근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계정에 남아 있는 재산 가치와 관계없이 접근 자체가 차단되는 경우가 흔하다.
4. 독일 – 헌법재판소 판결로 계정 상속을 인정한 대표적 국가
독일은 2018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내린 한 판결로, 디지털 자산 상속의 방향성을 확실히 제시한 국가다. 해당 사건은 자살한 15세 딸의 페이스북 계정에 접근을 시도한 부모가 페이스북 측의 거부로 인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 실제 사례
페이스북은 “해당 계정은 당사자의 사생활 보호가 우선이며, 계정 접근은 불가하다”고 주장했지만, 독일 헌법재판소는 “계정은 디지털 자산이며, 부모는 상속권을 가진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디지털 계정도 물리적 재산처럼 상속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공식 인정한 매우 중요한 사례다.
이 판결 이후, 독일은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인식을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으며, 주요 플랫폼 기업들도 독일 사용자에게는 사망자 계정 상속 시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접근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 유언장 또는 사망자 명의의 권리 위임장이 있다면 유족이 계정을 관리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됐다.
5. 한국 – 제도는 부재, 현실은 사각지대
한국은 아직까지도 디지털 유산 상속에 대한 명확한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망자 계정은 유가족이 플랫폼 고객센터에 민원을 넣는 방식으로 임의 처리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불편과 혼란이 발생한다.
✔ 실제 사례
2023년, 경기도의 한 유튜버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유족은 해당 유튜브 채널의 애드센스 수익 정산과 계정 접근을 위해 구글에 연락했지만, “사망자 계정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접근이 제한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 유튜버는 생전에 비활성 계정 관리자나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족은 결국 법률 대리인을 선임해 복잡한 문서와 사망 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한국은 아직 ‘디지털 자산’에 대한 법률상 정의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현재까지도 민간 기업(구글, 네이버, 카카오 등)의 자체 정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이 접근 불가 상태로 남거나, 제3자에 의해 임의 삭제되는 경우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 결론 – 국가별 디지털 상속 제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이유
디지털 유산 상속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빠르게 제도화되고 있는 영역이다.
미국은 유언장과 설정 기반 상속 체계를 갖추었고, 독일은 판례를 통해 상속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일본은 프라이버시를 최우선으로 계정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법제화 이전 단계로, 사용자 개인의 준비 여부가 상속 가능성의 핵심 변수가 된다.
이런 현실에서 사용자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 자신의 주요 계정(구글, 애플, 메타 등)에 ‘사망 시 처리 설정’을 활성화
- 패스워드 매니저에 모든 계정과 자산 목록을 정리하고, 신뢰할 수 있는 가족에게 비상 접근 정보를 공유
- 디지털 유언장 또는 공증 문서를 통해 상속자를 명시하고, 민감 정보는 암호화 저장
- 계정별 사망자 처리 정책을 정리한 문서를 가족들과 공유
디지털 상속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상속 관리의 한 축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당장”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플랫폼은 당신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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